열린마당

간호문학 공모전 수상작

조용한 손끝의 간호

최우수작 수필
조아라 | 부산대학교병원

“선생님은 MBTI가 뭐예요?”
조용한 주말 아침, 병실 순회 후 환자 상태에 관한 간호기록을 남기고 잠시 숨을 고르던 중이었다. 동료 간호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대화의 주제가 어느새 ‘MBTI’로 옮겨갔다.

나의 MBTI 검사 결과는 늘 같다. ‘ISTJ’. 그중에서도, 감정과 공감보다는 이성적인 판단이 늘 앞서는 대문자 T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면, 나는 계획적이고 규칙적이며 책임감이 강한 편이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서툰 사람이다. 이런 내 성향이 간호사로서 때로는 아쉽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환자들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동료들을 보며, 어쩐지 위축되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오늘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것이었다. 정해진 약 시간을 놓치지 않고, 환자의 상태 변화를 세밀하게 관찰하며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환자를 위하는 방식이라고 위로하곤 했다.

돌이켜보면 환자나 보호자에게 살갑게 웃으며 말을 건넨 기억이 많지 않다. 당장 내 일만으로도 벅차서 ‘그럴 여유가 없었다’고 변명하곤 했지만, 그 안에는 나의 성격적인 성향도 분명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코 환자 곁에서 소홀했던 적이 없었다. 주사 부위가 괜찮은지, 통증은 없는지, 활력 징후를 놓치지 않고 확인하며 이상 징후가 없는지 세심하게 살피는 것이 나만의 방식으로 실천한 간호였다. 나에게 간호란 말로 표현하는 다정함보다, 환자의 안전과 안정을 지키는 행동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날, 오래 입원해 계시던 말기 환자의 임종을 지키던 순간이었다.
마지막 숨을 고르시던 그 짧은 찰나의 고요함이 지나고, 환자의 배우자가 내게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입원해 있는 동안, 선생님께 제일 감사했어요. 항상 묵묵히 환자 옆에 있어주셔서 정말 든든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내가… 정말요?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넨 적도 없었는데. 그저 차분하게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그런 나에게 ‘가장 감사하다’고 말해주는 보호자의 한마디가 낯설고도 강하게 마음에 남았다.

집에 돌아오는 퇴근길,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는 스스로를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공감이라는 게 꼭 말로, 감정으로 표현되어야만 하는 걸까.

어쩌면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누군가의 마음에 닿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줄 방법을 찾고, 환자와 보호자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필요한 정보를 먼저 전달하며, 환자의 하루 리듬이 무너지지 않도록 규칙적인 간호를 이어왔다.

조용했지만 성실했고, 눈에 띄진 않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내가 환자 옆에 머무는 방식이었다. 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정확하게 대응하는 것이 나의 간호였다.

한때는 다정한 말 한마디 더 건네지 못하는 내가 부족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나는 환자의 입장이 되어 울어줄 수는 없지만, 환자의 변화에 누구보다 먼저 반응했고, 혼란스러운 순간에도 침착하게 그 곁을 지켰다. 그런 나의 모습이 환자와 보호자에게 ‘든든했다’는 인상으로 남았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공감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돌봄에도 다양한 색깔이 있다는 것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말로 표현되는 다정함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꾸준히 행동하는 것이 바로 다른 형태의 공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간호사로 살아온 지난 11년. 그 시간 동안 나는 말보다 행동으로 환자 곁에 머물렀고, 감정보다는 책임감으로 한 사람의 마지막을 지켜왔다. 그 누구의 간호보다 특별하지 않을지 몰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간호였다. 그리고 그 사실은, 내가 앞으로도 계속 이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힘이 된다.

나는 여전히 ‘ISTJ’다. 감정보다는 이성적인 판단이 앞서는 사람, 계획적이고 규칙적인 사람. 그러나 그 속에 담긴 나만의 성실함과 책임감이 누군가에게는 따뜻함이 되고, 위로가 되며, 힘이 된다는 것을 나는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간호사로 살아가는 동안, 말보다 행동으로, 감정보다 책임감으로 삶의 순간들을 지켜왔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이, 나에게는 가장 진실된 간호였다.

조용한 손끝으로 사람의 삶을 만진다. 그 손끝이 닿는 곳에 따뜻함이 전해진다면, 말이 없어도, 눈물이 없어도, 나의 간호는 충분히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 진심이 누군가에게 든든함으로, 안도감으로, 혹은 작은 위로로 전달되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