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간호문학 공모전 수상작

간호사로서 살아간다는 것

가작 수필
조연실 | 고신대학교복음병원

간호사로서 근무를 한지 어느덧 30년이 훌쩍 넘었다. 대학에 처음 들어와서 무작정 하였던 간호학 공부였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간호 직에 머물러 있을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취업 후 병원에 근무하면서 경험했던 두려움, 기쁨, 슬픔 등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던 일들이 수없이 많았었다. 매 순간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가슴속에 품어 두었던 사직서를 꺼내었다가 다시 집어넣곤 했던 일이 많았다. 흘러간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간호사로서 일을 시작하였던 신참내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의 삶은 그리 녹록치는 않았던 것 같다.
다양한 환자들을 대하기 때문에 그들을 모두 이해하기엔 심적 부담감이 상당히 컸었다. 입사당시 업무파악이 되지 않아 좌충우돌 헤매기도 하였었는데 어느 순간 이 일이 나에게 너무 익숙해져서 오히려 나태함과 초심을 잃고 살고 있지는 않는지 자주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환자들을 돌보면서 늘 괴롭지만은 않았었다. 그들의 얼굴에 편안함과 미소가 감돌 때마다 나의 작은 일로 인해 누군가가 행복해지고 고통에서 조금은 해방되어 질 수 있어서 기뻤었다.
과도한 업무와 교대근무로 헐떡이며 살았었지만 그 상황을 잘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환자들의 얼굴이었다. 그들에게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신규 때 나의 서투름을 눈감아 주었던 친절한 환자들 때문에 어쩌면 숙련된 오늘의 내가 있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인지 투정부린 환자들도 그리 밉지는 않아 보인다. 이것이 연륜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환자와 같이 공감하고 살아온 세월을 통해 그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운 것 같다.
간호사로서의 삶을 통해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은 내가 가정전문간호사로서 일한지 일 년 정도 되었을 때였다. 운전을 직접 해서 환자의 집을 찾아가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 나의 업무이다. 처음 가보는 낮선 도로위의 주행과 환자의 집을 찾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다. 잘못된 주소를 알려준 보호자 덕분에 근처에서 30분 넘게 헤매다가 드디어 도착한 환자의 집. 도착과 동시에 “주소를 잘못 알려주셔서 제가 길을 찾아 헤맸어요.” 하며 원망 섞인 말을 하려다가 환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구슬땀이 흐르는 나의 이마를 닦으며, 애써 미소를 지으며 환자와 보호자의 인사를 받았다. 위암이었던 환자는 거의 식사를 못한 상태로 피골이 상접하였다. 얼굴 광대뼈 위에서 반짝이는 환자의 검은 눈동자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나를 너무 기다렸다는 표정, ‘이제 조금 힘이 나겠지’라는 기대감에 가득 찬 눈빛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방문하여 환자에게 영양제 주사를 투여해 주었다. 가늘디가는 팔과 앙상하게 드러난 광대뼈, 맑고 검은 눈동자, 나를 향해 웃어주는 연한 미소가 오늘도 나의 뇌리를 스치며 지나간다. 이미 세상을 떠난 그녀는 마지막을 함께 해주는 의료인이 있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그녀의 마지막을 외롭지 않게, 이 땅에서 질병과 사투하며 머무는 시간동안 조금은 덜 힘들게 도와주는 나의 역할이 그녀에게 이렇게 큰 감동과 위로가 될 줄은 미처 몰랐었다.
엄청난 폭우가 예고 없이 쏟아진 어느 날, 이미 병원에서 나와 환자의 집을 향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폭우로 인해 좁은 골목에 물이 차여서 마치 시냇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50m 앞이 환자의 집인데 대문까지 물줄기를 피해 조심히 걸어갔지만 이미 신발에 물이 들어갔다. 환자 집에 도착했을 때는 신발과 양말에 물이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양말을 벗고 맨발을 드러내자 내가 부끄러워하는 것을 아는지 보호자가 냉큼 곰돌이가 그려진 캐릭터 단목양말을 내밀었다. 당시 규정상 이 양말은 복장에 어긋난 것이었다. 그래도 맨발을 환자 앞에 드러내놓기 미안해 주신 양말을 신고 환자의 방에 들어섰다. 아침 출근 때 드라이를 해서 단정하게 만들었던 나의 머리카락은 비에 젖어 숨이 죽은 배추마냥 푹 꺼져있는 것이 거울에 비춰졌다. 상처소독과 주사제 투여를 해주는 동안 환자와 보호자는 연신 “이 비를 맞고 와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때론 예기치 못한 상황 속에서 ‘나는 누군가에게 어려운 근무 상황을 하소연해야 해야 하나’ 하며 고민을 할 때가 있다. 그래도 나를 필요로 하는, 나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기에 나의 하소연이 불평과 원망이 되기도 전에 마음속에서 풀려버릴 때가 많다. 그래서 간호사로서 버티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나는 가정전문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때론 덥고 추운 날씨로 힘들고, 장거리 운전으로 힘들고, 주차할 곳이 없어 뺑뺑이를 돌기도 하고, 어쩔 땐 대소변을 치워주기도 하고, 체위변경으로 허리와 어깨가 근육통을 앓기도 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나로 살 수 있는 것은 내가 간호사로서 살아온 삶이, 살아갈 삶이 누군가에게 힘과 위로가 되고 나에게도 큰 보람을 선사해 주는 일이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간호사로서의 삶이 얼마나 지속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오늘 하루도 나에게 주어진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며,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을 사용하여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고자 노력할 것이다. 긴 세월동안 너무나도 많은 환자들과 간호현장에서 인연을 맺었었다. 내가 그들의 아픔을 잘 이해해 주지 못할 때도 있었고, 아픔을 알지만 병원 행정상의 절차로 인해 그냥 묵인했던 경우도 있었다. 많이 서툴고 더 친절하지 못했던 적도 많았지만 그들에게 진실 되게 간호를 제공해 주려고 무척 애를 썼었던 것 같다. 사람을 사람으로서 대우하며, 그 어떤 조건 앞에서도 차별성을 두지 않고, 병든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아픔을 위로하며 정직하게 간호하며 살아가고 싶다.
나는 아직 남아있는 간호사로서의 삶을 아름답고 헛되지 않게 보내고 싶다. 간호사로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가치 있는 인생의 길을 지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