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출근하는 순간마다 탈의장의 문구를 읽으며 옷매무새를 다듬는 희원은, 어느덧 5년 차 중환자실 간호사이다. 어린 시절, 간호사셨던 동네의 작은 진료소의 소장님과 함께 동네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열심히 날랐던, 그 순간부터 희원은 간호사를 꿈꿨고, 그 꿈을 이룬 순간부터 목표한 병원의 어엿한 간호사가 된 희원이다.
어느새 교대근무로 불면증을 얻었고, 만성피로는 훈장으로 생각한 지 오래지만, 업무에는 누구보다도 진심인 희원이기에 오늘도 치열한 하루를 위해 나이팅게일 선서의 한 문구를 머릿속에 되새긴다.
“안녕하세요 환자분, 담당간호사입니다. 날이 부쩍 더워요, 환자분도 입원하신다고 고생 많으셨죠? 얼른 치료해서 가족이랑 같이 일반병동으로 가요.”
환자들에게도 살가워 부서 내에서도 성격 좋기로 유명한 희원은 오늘도 웃는 낯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아니, 아가씨. 내가 새벽부터 입원한 지가 몇 시간짼데, 의사는 코빼기도 안 보이고 이럴 거면 퇴원시켜 줘! 나 이제 멀쩡해, 아프지도 않은 사람을 여기에 가둬서 없던 정신병도 생기려는 참이니까 퇴원시켜 줘요.”
중환자실은 면회도 제한되어 있고 침상안정을 취해야 하는 환자들이 입원하는 곳이다. 간혹 의식은 멀쩡하지만 불안정한 활력징후 및 출혈 위험성으로 집중관찰을 위해 중환자실에 입원하시는 분들이 흔히 호소하는 일들 중 하나로, 종종 일어나는 일이이기에 이런 상황이 익숙한 희원이었다.
“환자분, 이러시면 위험하세요. 지금 환자분은 패혈증으로 혈압이 위험수준으로 낮으세요. 승압제도 고용량 사용중이시구요. 답답하신 건 천 번 이해하지만, 치료는 계속 유지하셔야 해요. 교수님이 오늘 외래진료가 있으셔서, 외래진료가 끝나면 곧 오실 거에요. 앞에 안보이셔서 그렇지 저희가 다 환자분 상태를 보고 드리고 있구요. 교수님도 잘 알고 계세요. 기다리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지금은 중환자실에서 안정을 좀 취하셔야 해요.”
“아니! 죄송이고 나발이고, 아가씨가 의사는 아니잖아? 환자가 퇴원하겠다는데 무슨 말이 이렇게 길어! 내가 안 아프다니까? 멀쩡한 사람을 이렇게 가둬놓는 거 이거 범죄야. 범죄!”
중환자실이라는 환경에 답답함을 느꼈을 환자분이기에, 희원은 그런 마음은 이해가 갔지만, 가끔씩은 저런 말들이 상처가 되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구보다 죄송한 마음을 담아 대신 사과를 한다.
“환자분, 죄송해요. 너무 답답하시죠? 환자분께서 그렇게 느끼게 해 드려 다시 죄송해요. 제가 진짜 환자분한테 달려있는 모니터링 선들도 아주 깔끔하게 정리하고, 교수님께도 빨리 뵙고 싶어 하신다고 한 번 더 말씀드릴게요. 노여움 푸세요. 그리고 안 아프다고 느끼셔서 얼마나 다행이에요? 이젠 진짜 몸도 아프지 않도록 제가 옆에서 열심히 지킬게요. 한 번만 믿고 맡겨주세요.”
담당 환자에게 인사 한마디 건네었다가 갑자기 범죄자가 된 상황에도, 몇 시간을 뿔이난 채 기다린 환자를 생각하며, 한 번을 제대로 간호사라고 불러주지 않아도, 아무개 아가씨가 되더라도 ‘환자니까…’라는 마음으로 희원은 오늘도 상처를 멀리 흩어 보낸다.
“희원선생님, 환자분은 진정되셨어? 그리고 희원선생님도 괜찮아?”
동료 간호사 연진이 조심스레 희원에게 말을 건네며 위로의 말을 전한다. 이런 상황이 한두 번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기에 연진은 희원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괜찮아요, 선생님. 걱정 마세요. 제가 몇 년 차인데요. 거뜬합니다!”
흘려보낸 상처이기에, 희원은 스스로 괜찮다고 아무 일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흘러나오는 한숨을 속으로 삼킨 채 동료 간호사 연진에게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진짜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기도 했고, 출근할 때마다 사람 희원이기 전에, 간호사 희원으로 출근했기에 이런 일은 견뎌야 한다고 생각한 탓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희원 선생님 오늘 담당하신 최지환 환자분, 교수님이 BIPAP 하자고 하시던데, 원래도 치료에 좀 비협조적인 분이신데 괜찮겠어? 걱정이네.”
BIPAP은 간헐적 양압호흡기계로, 기도 삽관 전 호흡부전인 환자분들이 시행할 수 있는, 사용경험이 있는 환자들 사이에서는 굉장히 불편하고 답답한 치료로 알려진, 환자의 협조가 매우 중요한 치료법 중 하나이다. 최지환 환자는 평소 치료에 부정적이며 비협조적인 환자라, 인계 시에도 치료에 협조할 수 있게 잘 봐달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난 희원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상상하며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네, 해봐야죠. 환자분에게 중요한 치료인데, 제가 잘 설득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교수님도 힘들어하시던데, 그래도 라포를 잘 쌓아봐야죠.”
희원은 어떻게 환자를 잘 설득시키고 이야기해 볼 수 있을지 이래저래 생각하며 마침 회진이 끝난 환자에게 다가갔다.
“최지환님, 교수님 이야기 같이 잘 들으셨죠? 오늘부터 BIPAP이라는 간헐적 양압기를 적용할 건데요. 호흡 마스크를 얼굴에 적용할 건데, 압으로 공기가 나오면 맞춰서 같이 숨을 쉬어주시면 됩니다. 조금 답답하실 수 있는데, 이 치료에 잘 적응하시면 더 편한 요법으로 변경할 수도 있으니 우리 같이 잘해봐요. 그럼 해드릴게요. 이 치료 유지하고, 몇 시간 뒤 혈액검사 있으니 결과 나오면 제가 바로 말씀드릴게요.”
희원은, 지환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 긴장한 채로 기계를 세팅했고, 커다랗고 딱딱한 산소마스크를 환자의 얼굴에 맞춰 장착했다. 기계가 작동하는 것을 확인한 뒤 희원은 다른 업무를 위해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후-웅’, ‘후-웅’, ‘띵띵띵띵-’
바람 새는 소리와 함께 모니터 알람이 지속적으로 울렸다. 최지환 환자가 BIPAP마스크를 벗어던진 채 눈을 꼭 감고 있었고, 알람소리에 동료간호사가 최지환 환자의 마스크를 주워 들어 적용하며 근처에 있던 희원에게 말했다.
“희원선생님, 환자 분이 마스크를 계속 벗으시고, 유지가 안돼서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고 있어요.”
희원은 다른 환자의 일을 보다, 동료 간호사의 말에 최지환 환자에게 급히 다가갔다.
“환자분, 이거 이렇게 계속 벗으시면 안 됩니다. 이러시면 숨쉬기 곤란하실 거예요. 벗으시면 안 됩니다. 아시겠죠? 하시다가 너무 힘드시면 교수님한테 말씀드려서 다른 방법도 찾아볼 테니 우선 이 치료에 집중하셔야 해요. 부탁드릴게요. 곧 혈액검사도 있을 거예요.”
굳게 닫힌 지환의 눈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고, 적용된 마스크를 보란 듯이 다시 벗어던졌다.
“환자분, 지금 이 치료가 환자분께 꼭 필요한 치료라 그래요. 압을 세게 불어넣어서 폐 환기에 도움을 주는 치료라, 일반적인 호흡으로는 환자분 상태가 좋아질 수 없어서 그래요. 부탁드릴게요. 이렇게 하시다간 피검사 수치도 안 좋아질 수밖에 없어요. 환자분 퇴원 안 하실 거예요? 평생 중환자실에서 저희랑 같이 하시려고요? 빨리 회복하셔서 가족들이랑 함께 하셔야죠.”
희원은 지환이 던진 마스크를 다시 주워 들어 지환에게 적용하려 했다. 그 순간 지환이 눈을 뜨며 고함을 질렀다.
“아니 내가 안 하겠다니까? 해서 뭐 하냐고. 이거 집어치워. 가만히 내버려 두라고!”
‘퍽-’ 지환은 고함소리와 함께 희원을 향해 버둥거렸고, 그의 주먹이 희원의 배에 부딪히며 희원의 몸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나졌다.
“아니, 환자분 뭐 하시는 거예요! 희원 선생님 괜찮으세요?”
지환과의 소란에 걱정의 눈초리로 함께 곁에서 지켜보던 동료간호사들이 희원에게 다가가며 희원의 상태를 살폈다. 희원은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끼며 간호사 희원이 아닌 인간 희원으로 소리쳤다.
“최지환 님! 지금 이게 무슨 짓이에요! 제가 지금 저 좋자고 하는 거 같으세요? 제가 환자분께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환자분께 맞을 정도로 잘못한 건가요? 환자분 이 치료 아니면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고요. 기도삽관하셔서 인공호흡하시고 싶으셔서 이런 거예요? 의식 없이 누워만 계시고 싶으시냐고요! 하지마세요. 그럼, 교수님한테 말씀드릴게요.”
하나하나 설명하며, 치료를 진행하던 상냥한 며칠 간의 희원의 모습과는 달리 이성을 잃은 듯한 모습에 지환이 당황한 눈초리로 희원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여전히 숨쉬기 힘들어 보이는, 가슴께가 들쑥날쑥한 모습이었고 그를 본 희원은 아차 싶은 얼굴을 하며 찌릿한 배를 부여잡으며 지환에게 말했다.
“하… 지환님 소리쳐서 죄송합니다. 지환님은 힘드셔서 그런 건데, 제가 환자분께 더 잘 설명드리고 힘든 부분을 해결해드렸어야 했는데, 어쩌면 검사결과만 신경 썼던 거 같아요. 일단 마스크 먼저 잠시 하고 계세요. 이러다가 숨 넘어가시겠어요. 교수님한테 너무 힘들어하신다고, 다른 방법은 더 없을지 여쭤볼게요.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잠시 쉬고 계세요. 말씀드리고 올게요.”
배의 아픔 때문인지, 현실에 쓰라렸던 것인지 아픈 사람에게 화를 냈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 희원이였다. 주변 동료간호사들도 다른 환자분들이 보는 앞이기에 희원에게 더 이상 어떤 말도 못 하고 어깨를 쓰다듬으며 무언의 응원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지환은 미안했던 탓인지, 숨이 쉬기 힘들었던 탓인지 이후 치료를 잘 받았고 이후 다행히 치료에 차도를 보이며 호전되었고, 일반병동으로 갈 수 있었다. 희원은 그 사이 근무가 맞지 않아 지환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으나 그녀의 동료 간호사에게 그 소식을 듣고, 그의 안녕을 마음속에서 조용히 빌었다.
평소처럼 출근 전, 탈의장에서 쓰인 문구를 보며 희원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잘하고 있는 건가? 안녕을 위해 헌신하려던 내 마음은 헌신짝이 된 거처럼 너덜너덜하네… 이런 내가 하는 간호가 진정 괜찮은 게 맞는 건가… ’ 최근 여러 일로 부쩍 많은 생각을 하게 된 희원은 한숨을 삼키며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엇! 희원선생님, 이거 최지환 환자분이 전해달라고 하셨는데, 이제야 주게 되네. 직접 보고 주기 부끄럽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어. 한번 읽어봐.”
편지였다. 그것도 최근 안 좋은 일이 있었던 최지환 환자의 편지. 희원은 편지와 함께 생각난 그날의 기억에 복잡한 마음으로 편지를 읽었다.
희원 간호사님께
안녕하세요, 얼마 전 희원간호사님의 담당 환자였던 최지환입니다.
얼굴 뵐 낯이 없어 이렇게 글로 인사를 대신합니다. 사실 치료를 위해 입원함에도 두려움이 앞서 어쩌면 저는 나을 수 없는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족들에게도, 또 남을 대함에 있어서도 저의 상황을 우선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더군요.
곁에서 꾸준하게 다정하면서도, 치료함에 있어서는 단호했던 희원 간호사님의 모습에 괜스레 더 어리광을 부리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어쩌면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사람이라는 믿음 때문이라면 너무나 비겁한 말일까요?
그런 제가 멋모르고 휘두른 주먹에 숨쉬기 힘들어하며 물러나시는 모습을 보며 제가 이런 사람이었나 하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 바로 사과드렸어야 했는데, 그동안의 제 모습에 더 입이 안 떨어지더군요.
그런 와중에 간호사님이 먼저 선뜻 사과하시는 것을 들으며, 저의 반정도를 사셨을 어린 간호사님이 베푸신 깊은 아량에 저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덕분에 자기 연민이라는 꿈에서 깨어날 수 있었습니다. 늦게라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저를 포기하지 않아 주셔서, 앞으로 남아있는 삶을 한 발짝 나아가게 해 주신 희원간호사님 감사합니다.
“희원 선생님, 다 읽었어? 눈시울이 붉은데? 최지환 환자분, 희원 선생님한테는 말 못 하신 거 같은데 굉장히 미안해하는 거 같더라고, 그리고 희원 선생님이 누구보다도 환자한테 진심인 거 잘 알고 계신다고 고맙다며 이 편지 전달해 달라고 하시더라. 얼굴 보고 직접 드리는 게 어떠냐고 했는데, 아직 그럴 용기는 모자란다 하시더라고. 자자 희원 선생님 우리 오늘 마치고 삼겹살에 소주 한잔 어때? 내가 쏜다.”
편지의 내용을 하나하나 읽어나가며, 희원은 자신의 마음이 감동으로 따듯해지는 걸 느끼며 헌신짝이 되었다고 생각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이렇게 웃음이 나는지 본인이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희원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오늘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본인이 누구인지.
“안녕하세요, 환자분. 담당 간호사 희원입니다. 날이 많이 시원해졌어요. 수면은 잘 취하셨나요?”
담당 환자에게 힘차게 인사하며 희원은 생각했다.
‘오늘도 나는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한다. 비록 헌신짝이 된 나일지라도 누군가의 안녕을 위한 새신을 위해. 나는 간호사니까 간호사 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