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간호문학 공모전 수상작

삶의 하프마라톤, 간호사의 길 위에서

우수작 수필
김세정 | 인제대학교해운대백병원

2025년 4월 27일, 설렘과 기대감을 가득 안고 바다 마라톤에 참가한 날이다. 새벽 6시 25분, 거제해맞이역에서 친구를 만나 동해선 전동열차에 몸을 실었다. 친구와 나는 신규 간호사 시절부터 힘들고 지칠 때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 30년 지기 친구이다. 그 친구와 함께 처음으로 참가한 이번 마라톤 대회는 우리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마라톤 참가는 일상생활에 변화를 주고 싶은 단순한 호기심이었으며,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한 확인적 도전이기도 했다. 사회인으로서 30년 동안 성장한 우리 스스로를 자축하기 위한 마라톤이었다. 또한, 앞으로 다가올 내일에 대한 무한한 도전에 자신 있게 다가서기 위한 에너지 충전의 시간이기도 했다. 이른 아침부터 전동열차 승강장에서 만난 운동복 차림의 많은 승객들을 보며, 우리처럼 마라톤 참가를 위해 기다리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참가자들로 꽉 찬 전동차의 열기처럼 나의 심박동수도 쿵쾅거리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라톤 완주는 60세 이전에 꼭 완주하고 싶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다. 마라톤 완주는 지구력뿐만 아니라 근력도 갖추어야 성공할 수 있는 운동으로, 평소의 꾸준한 연습이 한몫하기에 그 도전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은 더욱 컸다.
숲이 어우러지고 파도소리가 들리는 오시리아역에 내리자, 지도를 찾아볼 필요도 없이 인파의 흐름을 따라가 보니 목적지에 도착했고 우리 팀원이 머무는 부스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부스에 도착했을 때, 먼저 도착해 있던 동료들이 반갑게 맞아주었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짐을 푼 뒤, 우리는 가벼운 몸 풀기를 하며 기념사진도 찍었다. 지역사회의 주최로 열린 이 대회에 약 1만 명의 참가자가 모였고, 군중들 속에서 우리 팀의 부스가 있다는 사실이 긴 여행 중에 베이스캠프를 만난 듯 반갑고 든든한 기분이었다. 개인과 개인이 만나 우정을 쌓고, 우정은 서로를 알게 되는 유대감으로 연결되어 공동사회를 이루고,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단체를 형성하게 된다. 이번 하프마라톤 참가를 통해 소속감이 이런 기분이라는 걸 경험하게 되어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무엇보다 지금의 이 순간이, 내가 활동하고 있는 사회 구성원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고 팀원들과 함께한다는 생각에 든든한 후원자가 생긴 기분이었다.
출발선으로 향하며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 친구가 제 옆을 지켜주었다. 그는 나의 도전을 긍정적으로 바라봐 주었고, 훈련을 함께하며 기꺼이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주겠다고 자청했다. 후배들은 부스에서부터 출발선까지 짧은 거리였지만 친구처럼 나의 손을 꼭 잡아주며 함께 이동했다. 꼭 잡은 손을 통해 서로를 응원하는 마음이 전해졌고, 혼자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을 함께라면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출발 전, 우리 팀의 최고 연장자인 팀장은 개성이 넘치게 티셔츠를 짧게 자른 복장으로 함께 하였고, 우리의 얼굴에 페이스 페인팅으로 축제 분위기로 이끌어 주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마치 고대 전사들의 의식처럼,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마음과 마음으로 서로를 연결했다.
오전 8시 20분, 드디어 하프마라톤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천천히 출발하여 점차 속도를 올려 달렸다. 푸른 하늘과 맞닿은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내내 깊숙이 스며드는 바다 내음과 시골 햇살에 호흡은 편했고 순조로운 출발이 좋았다. 군무처럼 정돈되고 정제된 발소리에 몸을 싣고 친구와 함께 달리는 그 순간은 잊을 수 없는 한편의 추억으로 남았다. 7km 지점에서 풍악을 울리며 응원하는 농악대 소리는 에너지 충전의 장이 되어 주었고, 피로를 잠시 뒤로하고 숨이 막혀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힘든 과정도 다시 달릴 수 있도록 무한한 위안을 안겨주었다. 반대편 방향에서는 반환점을 돌고 되돌아오는 참가자들이 속속들이 보였고 그중의 한 명은 우리 팀의 팀장으로 지칠 줄 모르는 모습으로 "화이팅!"이라고 거침없는 샤우팅을 우리에게 보냈다. 그 덕분에 나와 친구도 정신을 가다듬고 포기보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다시 도전하는 마음으로 계속 달렸다.
오르막길에서는 이미 지칠 만큼 지쳐서 의지와 상관없이 달리고 있었고 어떤 참가자는 땀에 흠뻑 젖은 몸을 이끌고 걷는 모습도 보였다. 그때 내 친구에게 이전에 다쳤던 발목을 삐끗하는 위기가 찾아왔다. 친구는 "우리에게 시간이 충분하고 난 괜찮으니까 천천히 달려보자, 확인하고 곧장 따라갈 테니 걱정 말고 먼저 출발해"라며 나를 먼저 생각하며 부상도 아랑곳 않고 나의 옆자리로 돌아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조금만 힘내!"라고 응원해주었다. 오랜 친구의 헌신과 우정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4km 남짓 남겨두고 몸이 말을 듣지 않았고,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늦더라도 완주하겠다는 처음의 각오를 떠올리며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2시간 58분 32초의 기록으로, 우리는 마침내 결승점을 통과했다. 완주 지점을 통과할 때 사고 없이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잘 했다라는 성취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격으로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뜨거움이 양쪽 볼에 흘러내렸다. 친구의 헌신적인 페이스메이커와 팀원들의 응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번 하프마라톤은 건강한 삶을 향한 자발적 도전이었고, 그 과정에서 성취감을 맛보고 자신감을 찾게 되었다. 무엇보다 혼자가 아니라 Human connection으로 연결된 우리라는 공동체로 함께할 때 불가능도 가능해진다는 소중한 깨달음을 알게 되었다. 서로를 믿고 의지하면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의 과정도 설렘을 안고 완주까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발전하고, 개인의 성공적 경험은 우정을 넘어서 Human being Relationship으로 연결되어 소속감으로 이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더불어 도전은 무한하고 도전 자체가 성공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조금 더 나은 성적과 여유로움으로 완주를 했으면 하는 약간의 아쉬움이 교차했지만, 바다 마라톤은 우리 모두에게 잊지 못할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달려왔을까?라는 질문을 오늘 하프마라톤을 통해 재조명 해보았다.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꿈과 희망을 안고 부산으로 내려와 의료인이 되었다. 마치 출발선을 향해 준비하는 오늘의 설렘과 두근거림처럼… 기대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알람 소리에 눈을 비비며 하루를 시작할 때, 나를 기다리는 환자분과 그들의 가족, 함께 손발을 맞추는 동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른 새벽 고요한 평화 속에서 나는 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체크하며, 혹여나 빠뜨린 것은 없는지 꼼꼼히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나의 손길과 눈빛이 닿아야 비로소 안심하고 맞이할 수 있는 하루였기에, 매 순간이 책임감과 열정으로 채워진 하늘빛 시간들이었다. 환자의 쾌유를 돕는다는 작은 다짐과 각오는 젊은 날의 나를 지탱하는 굳건한 신념이었다.
전문직 간호사의 길을 걸으며, 30대는 가족을 통해 사랑의 의미를 깊이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가장 사랑하는 나의 가족, 특히 어린아이에게는 엄마의 품이 가장 포근한 세상이었을 텐데, 나는 늘 duty를 이행해야 했다. 사회인으로서의 역할과 엄마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갈등도 있었지만 가족의 배려와 이해로 힘듦을 극복할 수 있었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며 도움을 줄 수 있는 의료인으로 집중할 수 있었다. 나의 희생이 과연 정당한가 하는 죄책감은 사치였다는 것을, 나는 지금에서야 깨닫는 것이다. 그 시절 엄마가 일터로 나가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기엔 턱없이 어렸던 아이는, 이제 성인이 되어 엄마를 이해하고 나와 같은 길을 선택한 3년 차의 간호사이다. 아이가 엄마의 길을 걷겠다며 닮고 싶어 했을 때의 그 벅찬 감동과 자랑스러움, 든든함은 평생 의료인의 길을 선택하고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는 내 삶에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이다.
간호의 길을 걸어온 지 33년 차의 나는 현장에서 영역을 확장하며 깊이를 더해갔다. 무심히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어느새 나 자신도 모르게 온 열정을 바쳐 걸어온 그 길이 대견하고 스스로 자랑스러울 때가 있다. 특히 간호 현장에서 벼랑 끝에 선 환자들에게 “충분히 가능성이 있고 해볼 만하니 힘내세요.“라며 손을 잡아준 의료진의 격려와 그 목소리에 용기를 내어 수술을 받고 다시 가족과 함께 일상으로 귀가하는 환자의 뒷모습은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그 순간, 저는 단순히 기술적인 간호를 넘어 그들의 불안과 두려움에 공감하고 진심으로 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곤 했다. 33년간 축적된 경험과 연륜은 더 이상 단순한 일이 아닌, 생명을 보듬는 소명으로 제게 다가왔다.
하프마라톤처럼 인생의 하프인 지금, 나에게 간호는 공감으로 시작해 감동으로 되돌아오는 깊은 울림의 과정이다. 환자의 작은 신음에도 귀 기울이고, 그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마음을 나눌 때, 그들의 눈빛에서, 따뜻한 악수에서 전해오는 감사의 마음은 나의 삶을 다시금 충만하게 한다. 내가 걸어온 길보다 더 오랫동안 기억될 길, 누군가의 마음속에 따뜻한 위로와 희망으로 남을 수 있는 길을 열어가고 싶다. 새로운 가치를 찾는 나의 삶, 그리고 세대를 거듭하여 이어진 나의 길, 그것은 바로 공감과 헌신의 길이었음을 고백한다. 앞으로도 나의 발자취가 누군가의 곁에서 희망의 등불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길을 묵묵히 걸어갈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 달려온 오르막길의 숨 찬 기쁨이 성취감으로 이어지는 오늘처럼, 슬픔과 시련이 와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의 빛을 따라 오늘도 내일도 끊임없이 나아갈 것이다. 나의 친구가 보여준 헌신적인 우정을 기억하고 팀원들이 보내준 동료의식을 이어가며, 나의 손길이 필요한 그 자리에 서서 성실히 나의 길을 나아갈 것이다. 이는 진정한 실패란 기회나 도전을 져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며, 도전 자체가 무한한 가능성을 담고 있기에 그 자체만으로 이미 성공이고 무한히 빛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내가 속한 일터가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 소속감과 안도감을 줄 수 있는 든든한 그늘이 되어주듯 나의 길, 간호사의 길은 이렇게 밝게 떠오르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따뜻한 손길을 주기도 하고, 가끔 그들과 그들의 가족이 쉬어 갈 수 있는 위로의 그늘이 되어 주기도 하며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그날까지 함께 할 것이다. 물론 혼자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나의 친구, 후배, 그리고 선배들이 걸어왔던 그 길을 오늘도 자신 있고 건강하게 첫발을 내딛고 있다. 그리고 이 길 위에서 만날 수많은 희망과 도전에 기꺼이 응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