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간호문학 공모전 수상작

방울토마토

우수작 수필
박봉희 | 봉생힐링병원

호들갑을 떨지 않을 수가 없다.
아니, 호들갑을 떨고 조금 모자란 사람처럼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다.

엄마는 친구가 주셨다고 종이컵에 담겨진 5센티 남짓한 방울토마토 모종을 가지고 오셨다.
엄마 친구는 언젠가 방울토마토를 먹다가 몇 개가 상태가 좋지 않아 화분에 거름이라도 되라고 베란다 빈 화분에 던져두었는데 어느 날 그 화분에서 싹이 나고 토마토 모종이 자랐다고 한다.
그 모종들을 나눠서 종이컵에 하나씩 담아 엄마에게 키워보라고 3개를 주셔서 내게까지 토마토 모종이 오게 되었다.

종이컵에 담겨있는 작은 모종 3개를 보는데 갑자기 방울토마토 키우는 농부가 되어보고 싶은 의욕과 함께 아파트 베란다에서 방울토마토를 키우기보다 병원 앞뜰 빈 땅에 한 번 심어서 키워봐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벌써 방울토마토가 열린 상상을 했었다.
그렇게 내게 온 작은 모종 3개는 5월 어느 날 나와 함께 출근을 했다.
출근해서는 창가에 종이컵 세 개를 나란히 나란히 줄 세워 올려두었다. 퇴근 시간이 되고 나는 모종삽 하나와 생수통에 한병 가득 물을 담아 들고 병원 뜰 빈 공터로 갔다. 그곳은 밭이라 할 수 없는 딱딱한 땅이었다. 물을 뿌려가며 모종삽으로 겨우 반 뼘 정도 깊이로 땅을 일구고 30센티 간격으로 토마토 모종 3개를 심고 물을 흠뻑 주었다.
드디어 대단한 방울토마토 농사를 시작했다. 왜 그렇게 뿌듯했을까...

그날 이후로는 나는 출근해서 매일 토마토 모종을 보러 간다.
밤새 안녕했는지, 바람 많이 부는 언덕이라 센 바람에 넘어지지는 않았는지 눈으로 확인하는 일을 반복한다. 1밀리미터도 더 자라지 않는 듯 그대로인 토마토 모종을 매일 매일 들여다 본다.
마치 내가 매일 각 부서의 보고장을 보거나 환자들 상태를 적은 간호기록을 들여다보고 환자를 만나는 아침 일과와 똑같아 보인다.
토마토를 키우는 것과 환자를 보는 일이 아주 다른 일은 아닌듯하다.
관심을 가지고 긴 시간 지켜보고, 눈으로 자세히 봐주는 일이 평생 우리가 하는 간호사의 일인데, 척박한 땅에 심어놓은 토마토 모종을 돌보는 일도 너무 똑같은 관심과 정성이 있어야 하는 일이라서 토마토 모종을 보면서 매번 혼자서 실없이 웃는다.
이런 시간속에 토마토 나무는 한 뼘 정도 자라고 이젠 아주 작은 노란꽃이 한 두개 달리기 시작한다. 참으로 신기하고 감사했다.

어느날 토마토 라운딩을 갔더니 밤새 고양이가 밟았을까? 아니면 사람이 지나가다 모르고 밟았을까? 세 그루 중 가운데 한그루가 부러져 있다. 부러진지 그리 오래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땅에 다시 심을 수는 없는 상태라 어찌나 실망스럽고 마음이 안 좋았는지 모르겠다.
부러진 토마토 모종을 가지고 사무실에 와서 작은 화병에 꽂아 두었다.
시간이 갈수록 시들고 잎이 쳐져서 늦은 가을 돌담에 늘어둔 무청처럼 토마토 모종은 점점 시들어간다.
참으로 속상한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왠지 선뜻 쓰레기통으로 시든 토마토 모종을 던져버릴 수가 없었다.
축 쳐져버린 모종을 화병에 꽂아 창가에 두고 바람이라도 쐬주고 싶어 창을 열어두고 실망한 마음 가득 안고 퇴근을 했다.
주말이라 이틀을 지나고 출근을 했는데..
이틀 동안 기적이 일어나 있었다. 축 쳐진 토마토 모종이 고개를 들고 시들어서 겨우겨우 달려있던 노란 꽃송이가 열려 있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오각형 노란 꽃송이가 날 좀 보란 듯이 활짝 펼쳐져 있다.
‘어머나’ ‘어머나’를 몆 번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생명의 경이로움이란, 정말 상상하지 못할 일이 눈앞에 벌어진 것이다.
나는 이제부터 다른 방법으로 토마토를 키워야겠다고 또 야심 차게 생각을 한다.
지금부터는 물꽃이를 해서 뿌리를 내리고 수경재배를 해야겠다..
또 거창한 꿈을 꾼다.
매일 물을 갈아주고 기도하듯이 잘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며 가며 틈만 나면 들여다 본다.
그렇게 주말을 지나고 출근했더니 노란꽃 두 개 중 하나가 꽃이 지고 정말 작은 신생아 손톱 만한 파란 방울토마토 열매가 달려있다.
‘세상에’ ‘세상에’를 연발했다.
어찌 호들갑을 떨지 않을 수가 있을까?
오늘 아침 옆 사무실 직원들에게 모두 보여주고 그동안의 히스토리를 장황하게 읊조리고
나는 세상에 아무도 가지지 못한 것을 혼자 가진 사람처럼 떠들었다.
죽었다고 생각한 방울토마토의 대단한 부활이다.

나는 올해 39년차 간호사이다.
한 번도 병원 현장을 떠나본 적 없는 임상간호사인 나는 신규간호사 시절을 거쳐 이제는 퇴직을 앞두고있는 이 시간까지 단 한시도 환자 돌보는 일을 손에서 놓아 본 적이 없다.
환자를 새로 만나는 첫 순간부터 한가지 정보도 놓치지 않으려고 매의 눈으로, 감각으로, 그리고 감성으로 우린 환자와 인연을 맺는다.
치료과정에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화를 내기도 하는 시간을 지나 감사하기까지 인간이 가지는 온갖 희노애락을 다 거친다.
호전되고 완쾌되어 퇴원할 때는 나의 일인 듯 기쁘고 또 결과가 그렇지 못할 때는 내가 죄인이 된 듯 마음이 무겁고 아픈 경험을 안고 있는 우리는 간호사이다.

3개의 종이컵에 담겨서 내게 온 토마토 모종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을 돌보는 간호사인 나와 토마토 모종을 돌보는 나는 어쩔 수 없는 간호사이다.
시들어버린 토마토 모종도 저렇게 하얀 뿌리를 물속에서 내리고 그 가느다란 뿌리로 물을 빨아올려서 열매를 맺게 하는 생명력이 있는데, 하물며 우리 사람에게는 그보다 더한 에너지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런 대상자를 돌보는 우리는 분명 토마토 모종보다 튼튼한 생명력을 다시 찾을 수 있게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간호사로서 종착역 가까이 온 내가 마지막에 재활이 필요한 환자를 돌보는 곳에 몸을 담고 있으니 저 작은 토마토 모종이 내게 준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경이로움이었다.
토마토 모종의 기적이 우리가 돌보는 많은 환자들에게 일어날 수 있도록, 기적까지는 아니더라도 회복의 기운이 우리의 정성으로 오롯이 전달 될 수 있도록 오늘도 기도한다.
매일 매일 작고 투명한 화병을 들여다보면서 ‘감사하다’, ‘기특하다’를 연발하는 나는 요즘 토마토도 돌보는 간호사가 되었다.
빨간 방울토마토가 되어 만나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우리에게 맡겨진 많은 환자들도 회복의 행복을 누리게 되기를 오늘도 기도한다.

2024년 6월 어느 날 방울토마토 화병 앞에서